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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과테말라 단기선교편지 6. 하늘과 맞닿은 마을에서

글쓴이 : 사랑채 날짜 : 2016-08-06 (토) 20:08 조회 : 360

내리 삼년째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나니 누가 내게서 선교사 향기가 난다고 했다.

우스개 소리고 빈말이겠지만 여간 듣기 좋은게 아니다.

향기(香氣)는 꽃이나 향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말한다.

좋은 냄새라는 것에서도 연상할 수 있듯이 향기는 참으로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이다.

여인의 향기, 봄 향기, 커피 향기, 그리스도인의 향기 등등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그런데 그런 좋은 향기가 내게서 난다니 좋을수 밖에 없다.

과테말라 고산지대 산속 깊은 마을에 올라가 하루 종일 좋은 향기에 취했었다.

똑같은 의미의 말인데도 사람들은 냄새라는 말보다는 향기라는 말을 선호한다.

여자 냄새, 봄 냄새, 커피냄새 등등 함께 쓰면 여간 좋은 말이 아님에도

여자의 향기, 봄 향기, 커피향기라고 쓰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엄마 냄새라고 할 때는 반드시 엄마 냄새라고 한다.

그래야 정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 향기라고 하면 어딘지 너무 먼 느낌이다.

엄마 냄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냄새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나는 과테말라 그 높은 고산지대 산속깊은 외딴 마을에서 엄마 냄새를 맡았다.

커다란 산이 주는 아늑함은 내게 엄마의 품을그립게 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작정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선교센터에서 2시간여 떨어진 깊은 산속이다. 내가한시간 정도를 운전했는데

한시간여를 남겨두고 이춘봉 장로님께서 당신도 과테말라에서의 운전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운전대를 넘겨드렸다. 선교센터가이미 2,000미터 이상 고산지대인데

우리가 가고자 하는 사역지는 그보다 1,000에서 1,500미터가 더 높은

정말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한 마을이었다.

어느땐 맑은 하늘이었다가 갑자기 안개가 자욱해져 한치 앞도 안보이는 마을이었다.

눈앞에서 보니 안개이지 산밑에서 보면 그건 구름이었다.

구름위 를 지나는 것은 비행기를 탈때나 그러는 줄 알았는데

산위에서도 구름 위를 지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선 만질 수 없었으나

산 위에서는 만지기도 하고 그 속을 헤쳐나가기도 했다.

그 산 위를 오르면서 구름도 울고 넘는다는 유행가 가사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

그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구름인들 어찌 울지 않았으랴 싶었다.

평소 구름 위에는 예수님이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을 간혹 한 적이 있는데

거기 그곳에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하나 가득 있었다.

 


 


 


 

 

 


그 산 위에서 점심 급식 사역을 했다.

메뉴는 판에 박은 듯 어디에서나 똑같아서 쌀밥과 팥 삶은 것 조금

그리고 닭도리탕에서 건져낸 큼지막한 닭고기와 바나나 껍질에 싸서 삶은

옥수수 으깬 전병이었다. 니카라과와 작년 과테말라 선교지에서는 우리 음식은

따로 도시락을 싸왔었는데 이번엔우리 일행 모두도 같은 음식을 먹었다.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그랬겠지만 대충 삶아낸 닭고기가 참 맛있었다.

다만 옥수수 전병은 밍밍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고추장에찍어 먹으니

번에 동공이 확장될 정도로 별미였다. 일행들은 다들 한 개도 채 못먹는 것 같았는데

나는 고추장에 찍어서 세 개나 먹었다. 옆에 앉은 현지인에게 고추장을 권하니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우리가 과테말라 음식을 낯설어 하는 거나

저들이 낯선 우리 음식을 낯설어 하는 것이 피장파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산 밑의 마을을 집집마다 돌면서 노방전도를 했다.

심을 먹고는 거기 모인 어르신들에게 우리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아이들과 손을 마주잡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양희선 집사님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놀이를 가르치며 함께 놀았고,

이춘봉 장로님과 김진기 장로님은 아이들에게 태권도 기본 동작 몇 개를 가르쳐 주었다.

특히 김진기 장로님은 줄넘기와 서서 밧줄로 풀고 당기고 하는 씨름,

손바닥으로 상대방 밀기 등을 가르쳐주며 함께 놀아 주었다. 

 나는 할 줄도 모르는 축구를 한답시고 공은 근처도 못가보고 그저 내리 땀만 주룩 주룩 흘렸다.

이누가 선교사님은 진료하느라 주먹땀을 흘리고 있었고,

김영채 권사님과 김영희 집사님은 이누가 선교사님이 처방해준 처방전대로

약을 나눠주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나는 애꿎게도 진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금년에도 역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하며 수줍음 많은 사람들이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나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고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모르니 그저 서로 멀뚱 멀뚱 바라만 볼 뿐이었다.

산속의 사람들은 영어는 커녕 그 나라의 본국어로 통용되는 스페니쉬도 모르고

그저 자신들의 부족의 언어인 마야 민족의 고유어 중의 하나인 키체어를 쓰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키체어를 아는 통역이 스페니쉬로 통역하면

영어를 아는 통역이 스페니쉬를 영어로 통역하여 겨우 의사 소통이 되곤 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말로 기도했다.

성령님께서 터치해 주시리라 믿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할때 내 기도의 한국말이

돌연 키체어로 변화되기를 바라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끝내 그런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온 몸과 마음이 성령으로 뜨거워지는 기적이 매순간마다 일어났다.



 


 


거기 아낙네들이 모여서 밥을 짓고 닭을 삶는 모습이

저 옛날 내가 살던 시골 마라니 산동네의 그 풍경과 비슷해서 정겨웠다.

혹시 내 어머니도 거기 계신가 하여 두리번거렸으나 찾지 못했다.

렇게 함께 모여 닭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일년에 몇 번 안된다고 했다.

현대문명이라곤 겨우 전기 하나 들어오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척박한 땅,

위험한 고지대에서 고단한 인생을 사는 분들이었지만

그분들의 미소와 내 어머니의 미소와는 꽤 많이 닮아 있었다.

 


 

 


이 분이 그곳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시다.

오전엔 초등학생이 수업하고 오후엔 고등학생들이 수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분은 우리가 그곳에 와서 고맙다는 말은 짧게 하시더니

하수구 공사니 학교 시설이니 수업 재료니뭐 니 하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주 장황스럽게 많이 하셨다.


어느새그 곳 사람 냄새 정겨운 과테말라 3,500 미터 고산지대 마을을 떠나 온지도

일주일이 되어간다. 마음을 그곳에 두고 온 까닭인지 아직도 그곳이 눈에 삼삼하다.

예수님을믿으라고 하자 그러마고 하던 키 작은 할아버지의 파안대소가 보고 싶다.

함께 기도하고 싶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의 미소가 너무 그립다.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줬더니 고맙다며 활짝 웃던

22살짜리 여대생 통역 알리의 미소도 그립다.

김영희 집사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던 22살짜리 통역 아가씨 네슬리도 보고싶고,

나를 아빠라 부르던 21살짜리 통역 아가씨 까뛰도 보고 싶다.

자기 아빠는 이제 겨우 마흔 다섯살인데도 쉰 여덟인 나보다도 더 늙어 보인다며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뭐냐고 묻길래 ‘김치’라고 했더니 고개를갸우뚱 하던 아이다.


아무래도 나도 그곳에 가서 살아야 할까 보다.


☞특수문자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