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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항아리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4-01-24 (금) 04:41 조회 : 1564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항아리

 

어린 시절 방학 때면 할아버지 댁에 가서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고, 저녁이면 들려주시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손주는 준비된 항아리가 되어야 해.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항아리가 되어야지”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나이가 어려 그 뜻을 잘 몰랐지만, ‘준비된 항아리’라는 말씀은 깊이 각인되어 갔다.

 

나의 20대. 열정은 한 마디로 ‘꿈’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꿈만 꿀뿐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우리 집에 전화가 있다는 죄로 오만 심부름을 다 해야 해. 아휴 미치겠다.” 하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전화가 귀한 때라서 급할 때 전화 있는 이웃 집에 연락하여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우리 사업하자! 전화 받기 사업!” 제안하고 전단을 만들어 버스 정류장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급한 일 있으면 전화해 주세요. 집으로 전해 드립니다. 잠실 1단지 300원, 2단지 500원!” 인기 폭발이었다. 개학하면서 사업은 접었지만, 나는 등록금을 번 것 외에 자신감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30대. 내 열정은 ‘도전’이란 한 마디로 응축되었다. 5년의 열정적인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리고 작은 개인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다양한 업무를 빨리 배우려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신바람 나는 일이다. 나를 믿어주고, 인내하고, 끝까지 후원해 주신 사장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회사는 성장을 이루었고, 그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가 되었다. 8년의 직장생활은 내 인생 최고의 도전 시기였다.

 

40대는 ‘패기’가 열정이었다. 사장님의 후원 가운데 내 사업을 열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자신감도 있어서 미친 듯이 일했다. ‘내 집, 내 공장이 생기면서 그 이후엔 신앙적인 일에 더 열심히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두 배, 세 배 사업이 확장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지만,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무한 질주하듯 달려온 나의 건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때 나를 돌아보게 해 준 것이 아버지 학교 였다. 꿈과 도전과 패기의 방향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나는 50대가 되었고 열정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소천하신 지도 어느덧 40년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준비된 항아리’만 기억하고 노력했지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항아리’는 기억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뿔싸! 내가 놓친 것이 이거였구나. 진정한 열정은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항아리인데....” 바닥이 드러나는 인생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고 함께 해도 그 가치가 빛나는 인생! 그것이 진정한 열정인데....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펴보았다.

구십 년을 맞고 또 일 년이 되었는데 (九十當年又一歲)

평생의 사업에 조금의 잘못이 없어라 (平生事業小無吳)

멀리 산 빛 감돌며 구름까지 뻗치고 (遠繞山光雲出芝)

벽촌의 저녁 풍경 안개가 아름답네 (僻村暮景秀煙孤)

자손과 친구들 함께 모여 앉은 자리에 (子孫親友會同席)

남산처럼 오래 살길 잔을 기울여 축수하네 (祝壽南山傾玉壺)

낳으시고 기르신 그 은혜 끝내 잊을 수 없어 (劬勞恩寵終難忘)

아침저녁으로 불효하는 무리를 위해 기도한다네 (朝夕祈求不孝子)

(1973년 12월 10일 맑음)

 

“이것이 90대의 열정이구나.” 91세로 새상을 소천하시기 석 달 전에 쓰신 일기에서 다시 한 번 그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퍼온 글: 이해달, ㈜ 지은 프라스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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